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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 3-7절 · 9살 친구에게 전하는 그림 말씀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오늘 읽을 말씀

🎧 첫째 마당 · 잃어버린 양 한 마리

틀어 두면 이야기에 맞춰 책장이 저절로 넘어가요

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함께 외워요

「하나님은 나 한 사람을 끝까지 찾으시고, 찾으면 하늘에서 잔치를 하세요!」

1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어요

예수님은 미움받던 사람들과도 함께 밥을 드셨어요
예수님은 미움받던 사람들과도 함께 밥을 드셨어요

누가복음 15장 1절을 보면,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왔어요.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투덜거렸어요. 「이 사람은 죄인들을 반기고 같이 밥까지 먹네!」

세리랑 밥 먹는 게 왜 그렇게 나빴을까요? 그때 이스라엘은 로마의 다스림을 받고 있었어요. 세리들은 로마 편에 서서 세금을 너무 많이, 너무 심하게 걷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세리를 강도에게 물건을 빼앗기는 것처럼 아주 싫어했어요.

바리새인들은 죄인이나 세리랑 밥을 같이 먹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드시고 반갑게 맞아 주셨어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원망했고, 예수님은 이 비유를 들려주셨어요.

2백 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양 백 마리를 돌보는 목자
양 백 마리를 돌보는 목자
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양이 백 마리 있는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어요. 그러면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그 한 마리를 찾으러 가지 않을까요? 그때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도 「당연하지요!」 하고 대답했을 거예요.

길 잃은 작은 양 한 마리
길 잃은 작은 양 한 마리
생각해 봐요

혹시 엄마 아빠를 잃어버린 적이 있나요? 아이를 잃어버리면 부모님은 하던 일을 다 놓고 아이를 찾으러 뛰어가요. 그리고 찾으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3찾으면 어깨에 메고 잔치를 해요

🎧 둘째 마당 · 하늘나라 수학

틀어 두면 이야기에 맞춰 책장이 저절로 넘어가요

찾은 양을 어깨에 메고 오는 목자
찾은 양을 어깨에 메고 오는 목자
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잃은 양을 찾은 잔치
잃은 양을 찾은 잔치

목자는 찾은 양을 어깨에 메고 기뻐하며 집에 와요. 그리고 친구와 이웃을 다 불러 「나랑 같이 기뻐해 줘! 잃은 양을 찾았어!」 하고 잔치를 열어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 한 명 때문에, 하늘에서는 아흔아홉 명 때문보다 더 크게 기뻐한다고요.

4우리의 셈법, 하나님 나라의 셈법

이 말씀은 가르치기가 참 어렵대요. 왜냐하면 우리는 늘 아흔아홉만 생각하고, 하나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우리는 언제나 「많은 게 좋다」, 「쓸모 있는 게 좋다」, 「이득이 되는 게 좋다」 하고 계산해요.

교수님 부부 이야기

목사님이 어떤 교수님 부부에게 「내일 15장을 공부할 테니 읽어 오세요」 했대요. 다음 날 물어보니 이렇게 말했대요. 「잘 이해가 안 돼요. 왜 한 마리에 관심을 가져요? 아흔아홉 마리가 더 중요한 거 아니에요?」

맞아요, 아흔아홉이 더 크지요.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는 하나님 나라의 수학이 있어요. 우리 수학은 「아흔아홉은 하나보다 크다」예요. 그런데 하늘나라 수학은 「하나가 아흔아홉보다 클 수 있다」예요.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여요.

5하나님 나라는 조용히 자라요

막 4:27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씨앗은 우리가 자고 깨는 동안 모르게 자라요. 무엇이 그렇게 자랄까요? 하나님 나라예요. 하나님 나라는 누룩처럼, 겨자씨처럼 아주 작게 시작해요. 너무 느리고, 답답하고, 안 자라는 것 같아요. 눈에 띄게 크지 않아요.

화분에 꽃 하나를 키워도 그래요. 쑥쑥 자라지 않는 것 같은데, 며칠 지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요. 하나님 나라도 똑같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하나를 보는 눈이에요. 아흔아홉 마리보다 한 마리가 더 귀하다는 마음,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는 마음이요.

6하나님의 「바보 같아 보이는 것」이 더 지혜로워요

🎧 셋째 마당 · 창문을 활짝 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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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님의 바보 같아 보이는 것이 사람의 똑똑함보다 더 지혜로워요. 수학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적은 것」이 사람의 「많은 것」보다 더 많다는 뜻이에요.

고전 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 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1절이 정말 중요해요. 「이 세상은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고린도 사람들은 아주 영리하고, 장사도 잘하고,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똑똑함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수학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각하는 힘(이성)을 주셨어요. 그래서 사람은 동물과 다르고, 그 힘으로 멋진 도시와 발명품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그 생각하는 힘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계를 봐야 해요. 예수님이 그 새로운 세계, 새로운 길을 가르쳐 주셨어요.

7창문을 활짝 열면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요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요
시원한 창문 이야기

어떤 목사님이 덥고 답답한 방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대요. 그런데 창문을 탁 열어 보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아, 정말 시원하다. 왜 이걸 꽉 닫아 놓고 있었지?」

예수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신 세계가 바로 이렇게 시원한 세계예요. 「하나가 아흔아홉보다 크다」는 세계요. 어처구니없고 바보 같은 계산법처럼 보이지만, 그 창문을 열면 정말 시원해져요.

8해바라기와 목마른 사슴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 시냇물을 찾는 사슴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 시냇물을 찾는 사슴

「해바라기」라는 이름 속에는 「해」가 들어 있어요. 영어로도 선플라워(sunflower), 그 안에 해(sun)가 있어요. 해바라기는 해와 떨어질 수 없어요. 우리도 해바라기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도록 지음받았어요.

시 42:1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알고 보면 우리는 목마른 사슴이에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밤새 지키는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듯, 우리 마음은 하나님을 그리워해요.

9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이 보여요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그럼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7절처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어요. 오늘 읽은 잃은 양 이야기도 예수님이 보여 주신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10하나님의 눈은 한 마리에게 가 있어요

🎧 넷째 마당 · 하나님의 눈은 한 마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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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알아야 해요. 우리는 「아흔아홉이 하나보다 크다」, 「착한 사람이 잘못한 사람보다 귀하다」는 생각에 익숙해서 그래요.

하지만 하나님의 눈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흔아홉 마리가 아니라, 잃어버린 한 마리에게 가 있어요. 이상하지요? 어리석어 보이고, 바보 같아 보여요. 그런데 이 마음을 가지고 살아 보세요. 사랑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해요.

답답했던 방에 창문을 열어 시원해지듯이, 우리가 성령님의 시원한 공기로 숨 쉬면 삶의 모든 것에 생기가 돌고 달라지기 시작해요.

여기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고, 「죄인」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관심은 아흔아홉에 머무르지 않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한 사람에게 가 있어요.

11그럼 형은 잊어버리신 걸까요?

15장에는 비유가 세 개 있어요. 잃은 양, 잃은 동전, 그리고 집을 나간 아들(탕자) 이야기예요. 탕자 이야기에는 집에 남아 아버지 곁에서 착하게 일한 형이 나와요. 그럼 하나님은 형을 잊어버리고, 잘못한 동생 편만 드시는 걸까요? 아니에요!

눅 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잖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란다.」 이미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벌써 주님의 품 안에 있어요.

12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이 말씀이 가르쳐 주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이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모른 채 사는 건 정말 슬프고 무서운 일이에요. 오늘도 하나님을 모른 채 힘들어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는 그 사람들을 잊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그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건 뭘까요? 하나님이 바라보고 사랑하시는 것을 나도 사랑하는 것이에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잃은 양을 위해 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예요.

13「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맨 마지막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물으셨어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주님. 주님이 아시잖아요.」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을 사랑한다는 건 주님 대신 그 양을 돌보는 거예요. 「사랑해요!」가 말로만 하는 구호가 되면 마음이 텅 비어요. 진짜 사랑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나도 사랑하는 것이에요. 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게 하나님께 얼마나 큰 기쁨인지 기억하며, 잃은 양을 찾는 데 마음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요.

14십자가는 사랑의 표시예요

🎧 다섯째 마당 · 잃어버린 동전과 잔치

틀어 두면 이야기에 맞춰 책장이 저절로 넘어가요

또 하나 기억할 것이 있어요. 사람의 똑똑함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어요. 하나님이 열어 주신 길,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어요.

고전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십자가 이야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바보 같은 이야기예요.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요.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의 표시예요. 그 사랑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요.

15크고 멋진 나라에서도

목사님이 아주 크고 멋진 나라에 가 보셨대요. 뒷골목 길도 넓고, 자동차도 멋지고, 모든 것이 크고 아름다웠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셨대요. 「여기 사는 사람들 마음은 답답하지 않을까?」

겉모습이 아무리 크고 멋져도 마음은 답답할 수 있어요.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 성령님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마음의 창문이 열리고 시원하고 멋진 세계가 와요.

16불공평해 보이는 아버지

탕자와 형 이야기

그 교수님 부부는 탕자 이야기도 이해가 안 된다고 했대요. 둘째 아들은 집을 나가 재산을 함부로 다 써 버렸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보자마자 맨발로 달려가 끌어안고, 씻기고, 새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 주었어요. 집에서 착하게 일한 형에게는 한 번도 그런 잔치를 해 준 적이 없는데요! 「아버지가 불공평해요!」

네, 불공평해 보이지요. 그런데 이 마음을 가지고 살면 시원해져요. 하나님의 지혜를 모르고 「나는 똑똑하다」고만 생각하면 이 세계에 갇혀 버려요. 「세상의 지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지혜를 없애리라」 하신 이사야의 말씀을 들어야 해요.

17잃어버린 동전 하나

등불을 켜고 찾은 동전 하나
등불을 켜고 찾은 동전 하나

열 개의 동전 중에 하나를 잃은 여인이 있었어요.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고 찾다가 드디어 찾았어요! 너무 기뻐서 이웃을 불러 「동전을 찾았으니 같이 잔치해요!」 했어요.

어떤 교수님의 생각

어떤 교수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바보 같다」고 했대요. 왜냐하면 동전 하나 찾았다고 잔치를 하면 동전보다 돈이 더 들잖아요! 장사하듯, 계산하듯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이 비유가 가르쳐 주는 건 뭘까요? 사람들은 동전 하나쯤은 버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값보다 훨씬 더 우리를 사랑하세요. 한 사람이 돌아오면 친구와 이웃을 다 불러 잔치하세요.

우리가 이 마음을 가지면 세상이 달라져요. 친구의 아픔과 외로움을 살펴 주고, 서로 마음을 써 주는 거예요. 「저 친구는 어디가 아플까?」 기억하며 사랑으로 덮어 주며 살면, 우리 삶이 달라져요.

18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봐요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을 받으려면 우리가 바라보는 곳을 바꿔야 해요. 예수님께로, 하나님께로 눈을 옮기면, 우리 계산법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사랑의 셈법에 눈을 뜨게 돼요. 그러면 멋진 새 세계가 열려요.

함께 기도해요

덧붙임 — 원고에는 기도가 없어서 말씀에 맞춰 덧붙인 기도예요

사랑의 하나님, 아흔아홉 마리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를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웠어요. 길을 잃어도 끝까지 찾아오시고, 찾으면 하늘에서 잔치하시는 하나님, 감사해요. 우리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외롭고 아픈 친구를 먼저 살펴보고,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나눠요

덧붙임 — 말씀 원문이 아닌 나눔 질문이에요

  1. 길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적이 있나요? 그때 마음이 어땠어요?
  2. 「하나가 아흔아홉보다 크다」는 하나님 나라 셈법, 어떤 뜻일까요?
  3. 탕자의 형은 왜 서운했을까요? 아버지는 형에게 뭐라고 했나요?
  4. 동전 하나 찾고 잔치를 한 여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5. 이번 주에 내가 살펴 줄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